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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예술'의 정의와 '극예술'의 범주에 대한 학자들의 주장

by 승히노벨 2024. 10. 22.

 

'극예술'이라는 용어는 이른바 문학의 3대 장르라 할 수 있는 시(서정장르), 소설(서사장르), 희곡(극장르) 중 희곡을 중심으로 한 예술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통상적으로 '극예술'이라고 하면 문학으로서의 희곡이나, 이 희곡을 대본으로 하여 공연에 올린 연극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대본이 없이 즉흥적으로 연기하는 연극 형태도 존재하고, 사람이 아닌 인형들에 의해 연기되는 연극도 있으며, 연극 극장이나 특정 장소에서 배우들이 희곡 대본을 들고 읽기만 하는 낭독극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극예술이라는 용어는 희곡이나 연극이라는 용어의 범주를 넘어 극적(dramatic) 속성을 지닌 다양한 예술 장르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보통 극 장르라고 하면 '배우, 관객, 희곡, 무대' 등을 떠올리고 이것의 원전으로서 희곡을 연상하게 된다.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이라는 희곡과 연극 공연을 떠올리거나, 유치진의 이라는 희곡과 연극 공연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혹은 '극장르'라는 용어는 서정장르, 서사 장르, 극장르라고 하는 문학의 3대 장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책으로 출간된 희곡집이나 잡지에 게재된 희곡, 또는 배우들과 연극 스태프들에게 제공되는 공연 대본을 자동으로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의 요소라 할 수 있는 '배우, 관객, 희곡, 무대'에서 희곡과 무대는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이라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전에 준비된 희곡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연극 전용 극장이 아니라 길거리, 광장, 학교 운동장, 공장 건물 등의 공간에서도 공연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한 경우들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연극이 '배우, 관객'을 필요충분조건으로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관객 없이 배우들끼리 공연하는 상황이나 배우 없이 관객들만 모여 있는 상황을 연극 공연이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연극 공연에서 희곡과 연극 무대(즉 연극 전용 극장)가 요소로 간주하기 힘들다면, 우리는 최소한 배우가 연기하고, 이 연기를 감상하는 관객만 있어도 극장르가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살아있는 실제 배우가 등장하지 않고 인형들만 등장하거나, 인형이나 배우들의 그림자로만 공연하거나, 배우와 관객이 존재하는 영화와 TV 드라마 감상의 경우에도 '극장르'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또는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어떠한가? 관객이나 시청자가 감상하는 대상은 그림으로 그려진 화면일 테지만, 이 역시 애니메이션 속의 등장인물 역을 맡은 성우(음성으로만 연기하는 배우)와 감상자가 존재한다. 라디오드라마의 경우는 어떠한가? 청자는 성우의 목소리 연기만을 소리로 들을 뿐이지 몸으로 하는 연기를 눈으로 감상할 수는 없다.
이처럼 극 장르의 범주 설정에 대한 어려운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설명한 연극학자로 마틴 에슬린(Martin Esslin)을 들 수 있다. 그는 극장르의 다양한 범주와 계열들을 설명하기 위해 '극마당(The Field of Drama)'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여기에서 에슬린이 사용한 'Field'는 '장' 또는 '마당'으로 번역될 수 있는바, '장'이라는 용어를 매우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개념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에 의하면 장이란 "여러 형태인 자본들의 분배 방식을 유지하거나 변경하려고 애쓰는 개인들이 충돌하는 장소"를 뜻한다. 여기에서 '자본'은 '예술 자본'이나 '상징 자본'으로 간주해도 좋고, 이 장을 각 매체 또는 각 장르의 분배 방식에 따른 인정투쟁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에슬린이 '극장르'의 개념을 확장하여 '극마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우리는 부르디외의 장이론에서 볼 수 있듯이 상호 갈등하고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면서 모여 있는 일종의 성좌로서의 여러 극적인 예술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에슬린은 '극' 개념들의 정의를 지나치게 협소하고 규범적으로 취급해서는 곤란하고 유동적인 경계들의 윤곽을 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재현 방식들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속성이 '모방적 행동'이라고 지적한 뒤 그리스 시대 음유시인의 시 낭송, 라디오나 카세트 레코딩에서 소설이나 희곡 텍스트를 낭송하는 것, 국가적 행사나 종교적 행사, 카니발 행진, 서커스에서의 곡예사들과 광대들의 연기, 군대 행진, 인형극이나 애니메이션 등도 일종의 모방적 요소와 함께 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에슬린의 설명에 근거한다면 '극마당' 또는 '극예술'은 희곡 텍스트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연극 공연만으로 그 범위를 한정 지을 수 없게 된다. 부르디외의 '장' 개념처럼 '극마당'에 모여 있는 여러 형태의 예술들은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주도권 경쟁을 벌인다. 영화, 애니메이션, TV 드라마, 라디오드라마 등은 각자 극장르에서 자신들을 뭉뚱그려 포함하려는 시도에 저항한다. 희곡과 연극이라는 특정 영역이 존재한다면, 영화와 TV 드라마 등도 각기 다른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슬린의 '극마당'이라는 용어 및 개념 제시는 일종의 영역 다툼이나 헤게모니 싸움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에슬린의 주장을 좀 더 유연하게 해석할 필요를 느낀다. 즉 그의 주장을 여러 다양한 예술 장르들을 극장르에 포섭하고자 시도한 것으로 해석하기보다는, 희곡과 연극으로 대표되는 극장르의 기본적인 속성을 주변의 다양한 예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에슬린은 위에서 극적인 예술의 특징을 "허구적 세계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 사실적인 인간존재와 또한 종종 사실적인 대상물들을 활용함으로써 '현실'을 재현"하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다양한 예술들을 '극마당'으로 포괄하려 한다.